본문 바로가기
과신뷰/기자단 칼럼

약자를 향한 시선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2. 1. 12.

"약자를 향한 시선"

- 서순범,《신앙의 길 (현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출애굽 법전 해설》서평

 

예비 신학생인 나는 모태 신앙인이지만 마음 한편에는 성경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오늘날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내용도 있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 그리고 사실 성경을 제대로 읽어 본 적도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언제부터인지도 모르는 사이에 성경을 모호한 텍스트로 여겨왔다. 최근에 우연히 출애굽에 관련된 책을 읽었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10가지 재앙이 애굽에 내리는 이야기, 광야에서 40년을 사는 이야기, 모세가 십계명을 받는 이야기 등 굵직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오늘날의 생활방식과 히브리 사회의 생활방식이 많이 다르겠지만 사회마다 그 사회를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한 법이나 제도는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대선을 앞두고 국가 정책이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지에 관심이 쏠려 있다. 출애굽 시대에 소소한 분쟁부터 폭력, 그리고 재산과 인권은 어떻게 보장되었을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있던 차에 책장에서 《신앙의 길》을 발견했다.

 

《신앙의 길》은 출애굽법전을 당시 히브리 사회의 관점에서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 준다. 당시의 배경과 사회 통념을 알고 보니 오히려 성경의 규율은 합리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출애굽법전의 각 구절이 담고 있는 본질적인 메시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나의 관심을 끌었던 몇 가지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출애굽법전에서는 노인, 여성, 아이, 빈곤층 등 약자들을 보호하고 동물들의 살아갈 권리까지도 보장해 주고 있다. 오늘날에도 약자들의 권리와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약 3000년 전부터 약자의 입장을 생각하여 법을 만든 것은 매우 앞서나간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출애굽법전은 주님께서 십계명과 함께 내려 주신 히브리 백성과의 언약이다. 출애굽기 21장부터 23장까지 십계명과 달리 특정한 경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법 관행을 지시해 준다(‘이런 일이 생기면 이렇게 하라’, ‘이런 일을 한 자에게는 이렇게 하라’ 는 식의 결의법). 출애굽기 21:20,21을 보면 종은 상전의 재산이라는 구절이 있다. 언뜻 종의 인권을 무시하고 주인에게 종속시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뒤의 26절과 27절(사람이 그 남종의 한 눈이나 여종의 한 눈을 쳐서 상하게 하면 그 눈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놓아 줄 것이며, 그 남종의 이나 여종의 이를 쳐서 빠뜨리면 그 이에 대한 보상으로 그를 놓아 줄지라)을 보면 종을 한 사람으로 인정하며 존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에 로봇에게는 인권이 없고 로봇은 주인의 재산이라는 인식이 있듯이, 당시에는 종이 주인의 재산이라는 인식이 통용되고 있었다. 주님은 그러한 사회에서 종들의 생명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규율을 내려 주심으로써 종들을 보호해 주신 것이었다. 생명 중에서도 특히 약자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기독교의 모토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스무 번째 질문 Q20(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 - 출애굽기 23:4, 5)의 내용을 읽고 마태복음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의 개인적인 원한으로 인한 원수가 곧 악인은 아니다. 주관적 정의에 따른 원수와 객관적인 정의에 따른 악인을 구분해야 한다. 따라서 주님 앞에서는 나도 원수도 평등한 주님의 자녀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을 망각하게 된다. 니체의 말처럼 타인에 대한 원한감정(resentment)은 상대를 절대적인 악인으로, 자신을 절대적인 선한 존재로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대방에 대한 부정과 열등감, 분노 등은 현실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감정에 얽매인 노예가 되게 한다. 그러므로 원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의 합리적인 해소 방법을 제시하는 주님의 말씀은 지극히 타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년간은 본인 소유의 토지에 농사를 짓고, 7년째에는 농사를 짓지 말고 내버려 두어 땅의 안식년을 지키라는 말씀이 있다(너는 여섯 해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 출애굽기 23:10, 11). 안식년에 대해서는 땅심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다면 쉽게 납득이 갈 것이다. 땅심은 건강한 작물을 길러 내는 땅의 힘(地力)이다. 이 땅심을 유지하기 위해 한 해씩 농사를 쉬게 된다. 그러므로 안식년을 지키는 것은 결과적으로 소출이 늘어나게 되어 지주에게도 좋은 일이다.

 

그리고 쉬는 땅에서 자연적으로 자란 작물은 가난하여 사람들과 동물들이 먹을 수 있게 하여 굶주리지 않게 해 준다. 많은 땅을 가진 지주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여 약자들에게 베푸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주님은 강자에게 무조건적인 희생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합리적인 규율을 주셨다. 또 길의 동물들도 굶주리지 않도록 헤아려 주셨다. 인간과 동물의 존엄성에 분명히 차등을 두고 있지만, 염소의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라는 등(출애굽기 23:19) 동물에게 지나치게 잔인하게 대하지 못하게 정하셨다.

 

출애굽법전이 전하는 메시지인 약자에 대한 배려와 보호, 타인과의 화합은 과거에도 그래 왔고 앞으로도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가치이다. 성경 속의 가치들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더 나은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신앙의 길》은 간략하고 명쾌하게 쓰여서 잘 읽힌다. 목사님이나 선생님이 옆에서 들려주는 이야기 같은 느낌이다. 따로 각주가 없는 대신 뒤에 새로운 십계명에 대한 해석과 이스라엘의 절기만 따로 부록으로 엮었다. 짬짬이 한 꼭지씩 읽는 재미가 있다.

 

 

글  |  노은서

감신대 예비 신입생.
과학과 신학에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공부하고 서평을 씁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