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신뷰/기자단 칼럼

코로나19 팬데믹, 기후 위기 시대에 노아 홍수 이야기가 주는 교훈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2. 3. 10.

이 내용은 김회권 교수의 [인문고전으로서의 구약 성서 읽기]의 내용 중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김회권, [인문고전으로서의 구약성서 읽기]

14주차 강의안 14강-1 인문고전으로서의 구약성서 읽기 사례

2: 바벨론 홍수설화의 빛 아래서 본 노아 홍수 이야기

 

 

그동안 창세기에서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읽으면서 드는 의문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사람의 죄악이 가득하여 한탄하시며 근심하시다가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쓸어버리시기로 작정하시고 그 계획을 홍수로 실행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세상의 피조물을 다 쓸어버리면서 왜 물속에 있는 생물은 멸종 대상에서 제외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속 생물은 다른 생물과 다른 특별한 점이 있는가, 아니면 어떤 영적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창세기에서 세상을 심판하는 도구로 특별히 물을 언급하고 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1.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창세기 6~9장에 자세히 묘사되지만, 좀 더 큰 맥락에서 보면 창세기 1~9장, 좀더 넓게는 창세기 1~11장이 노아 홍수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창세기 1~11장은 아브라함이 등장하기 직전의 범례적인 원시 역사, 즉 모든 인류의 역사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원시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선한 창조, 창조질서 안에서의 균열, 창조질서에 대한 인간의 반역, 하나님의 개입과 심판, 그리고 심판으로 흩어지는 인류의 분산 과정의 사이클을 압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2. 노아 홍수 이야기는 가나안 토양에서는 나올 수 없는 이야기다. 가나안 땅은 강의 범람으로 땅이 물에 잠기는 재앙을 경험할 수 없는 지형이다. 반면에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끼어 있는 메소포타미아는 거대한 물의 범람을 주기적으로 겪는 땅이었다. 노아 홍수 이야기는 ‘에누마 엘리쉬’, ‘아트라하시스’라는 고대 바빌로니아의 창조 이야기와, 또 수메르의 ‘길가메시 서사시’와 유사하다. 창세기의 창조와 우주 기원 서사들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모든 문명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에누마 엘리쉬’에서는 최고의 신 마르둑이 물과 물을 분리하여 땅을 창조했다고 한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는 인간의 죽음을 신의 불멸불사성(不滅不死性)에 비하여 열등하고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고대 수메르인들의 죽음관을 반영하고 있다.


3. 창세기의 창조 및 홍수 이야기는 하나님의 창조행위가 바로 창조 이전의 원시혼돈 세력에 대한 통치행위였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는 땅과 물이 뒤엉긴 상태로부터 첫날 창조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창세기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깊음’으로 번역된 히브리 원어 ‘터흠’은 단지 깊음이 아니라 ‘바다 같은 심연’ 즉 물을 의미한다. 물이 땅을 뒤덮고 있는 상태를 ‘혼돈’으로 표현한 것이다. 창조는 생명이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은 깊은 물이 완전히 뒤덮어서 어떤 피조물도 거주할 수 없는 황폐한 상황을 극복한 사건이다. 즉 생명배척적인 영역을 생명보양적이고 생명창조적인 영역으로 만드는 일이 하나님의 창조이다.

 

 

4. 창조 사역의 핵심은 하나님은 모든 물은 한 곳으로 다 모여서,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도록 명하는 것이다.

창세기 1:6~7, 9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세기 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조는 물속에 있던 땅을 건져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물은 한 곳으로 다 모여서,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물이 경계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 유폐되고 감금되어 있게 한 것이다. 땅은 피조물의 생명의 보금자리이다.


5. 여기서 창조의 특징이 부각된다. 창조의 특징은 하나님이 땅을 뒤덮고 있는 물들을 한 곳으로 가두어 유폐시켜서 땅, 즉 피조물과 인간이 사는 거주지의 경계를 넘지 않도록 명령하신 것이다. 이 명령은 창세기에서 최초로 발설된 이후 욥기 38장과 시편 74편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욥기 38:8~11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그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시편 74:17(상) “주께서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창조란 혼돈의 바다로부터 마른 땅을 드러나게 하여 보존하는 것이다.

 


6. 물은 하나님의 창조 이전에 선재한 물질로 보는 견해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 교리와 충돌할 수 있다. 그러나 창세기의 창조기사 어디에도 하나님이 물(바다)을 창조했다는 이야기가 없다.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는 창세기 1:1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만 주목할 때 가능한 교리이다.

 


7. 그런데 창조 이야기에서 주목할 것은 창조 이전에 땅을 뒤덮고 있던 거대한 물이 소멸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딘가 유폐되어 있기 때문에 여차하면 언제든지 다시 땅을 범람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창조세계는 다시는 물이 땅을 범람시켜 잠기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만든 불가역적 질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언제든지 창조 이전의 혼돈으로 퇴행할 수 있는 가역적인 후퇴가 가능한 열린 체계이다.

 
8.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마친 후 안식하신 것은 피곤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은 원래 피곤하지도 곤비하지도 않으신 분이라 안식할 이유가 없다(이사야 40:30~31). 안식이란 전쟁에서 이긴 자가 누리는 안식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창세기 1장에서 창조와 관련된 숱한 명령들은 어둠과 혼돈의 세력에 대한 일종의 전쟁승리를 확증하고 송축하는 행위다. 이러한 구약의 본문들은 바벨론 창조설화처럼 ‘혼돈세력과의 전쟁을 통한 창조’ 신학을 보여준다.


 
9.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하나님의 선한 창조질서(특히 땅)를 창조 이전의 혼돈 상태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피조물의 패역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이 세상을 다시 하나님이 통치가 완전히 실현되는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기에는 많은 난관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홍수 이야기는 우리가 누리는 창조질서가 인간의 죄악으로 창조 이전의 혼돈으로 퇴행할 수 있다는 창조질서의 가역성 때문에, 우리가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지구대리통치 위임사명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준다.

 
10. 노아 홍수는 창조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반(反)창조이자 첫 창조의 일시적 와해를 의미한다. 따라서 창조세계는 한번 창조되었기 때문에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반응과 응답 여하에 따라 다시 창조 이전의 혼돈으로 가역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노아 홍수의 핵심 메시지다.
 

11. 실제로 현재 지구 상에 있는 모든 물, 즉 강과 호수와 바다뿐 아니라 남북극의 얼음, 지하수까지 합하면 지구 상의 모든 땅을 물에 잠기게 하고도 남는다. 따라서 하나님 창조세계의 평화는 하나님으로부터 통치 위임을 받은 인간이 이 유폐된 물이 땅을 범람하지 못하도록 계속 잘 관리해야 선한 창조의 질서가 지켜질 것이다.

 
12. 노아 홍수 이야기는 창조질서의 내적 취약성을 인류에게 교훈한다. 만일 인간의 죄가 관영하여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 임계치를 넘으면 창조질서는 다시 혼돈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창세기 6장은 노아 홍수 직전의 이 땅의 부패한 상태를 알려주고 있다.

창세기 6:11~12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13. 우리는 이 땅이 인간의 반응과 관계없이 항상 그 모습 그대로 인간에게 우호적인 거주공간으로 남아 있을 것으로 확신해서는 안 된다. 지구를 창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과업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맞게 지구를 잘 관리하여 보전하는 것은 인간에게 위임된 과업이다. 노아 홍수 이야기는 지구 보전 책임을 위임하신 하나님과 동역하는 일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임을 가르쳐준다.


14. 노아 홍수 이야기는 현재 코로나 19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생태신학적으로 볼 때 매우 중요한 함의를 준다. 코로나바이러스는 기후재앙이 초래한 동물거주지 축소로 인해 동물 숙주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에 옮겨붙어 초래하게 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따라서 코로나 팬데믹은 지구 피조물 사이, 특히 인간과 동물 사이에 서로 영역을 지키며 평화롭게 지내는 일이 가장 긴급한 의제임을 각성시키는 재난이다.

 
15. 현재 기후 위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지구를 책임 있게 관리하지 않으면 지구 자체가 인간에게 적대적인 행성으로 변할 수 있다. 우리가 지구의 자정능력을 너무 과신하여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를 많이 배출하고, 땅의 비옥도를 상실할 만큼 계속 화학비료를 써서 농사를 지으면 지구는 인간과 피조물에 적대적인 창조 이전의 환경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노아 홍수 이야기는 인간이 땅의 지배자가 아니고, 관리자요 보존자며 청지기임을 깨닫게 해준다.

 


 

글 | 송윤강

과신대 기자단으로 활동하면서 과학강연, 영화, 도서 등 과학 관련 리뷰를 기고하고 있다. 현재 아름다운서당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