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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기자단 칼럼

귀를 기울이면 보이는 것들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2. 3. 10.

귀를 기울이면 보이는 것들

- 영화 <돈 룩 업 Don't Look Up>을 보고

 


이 영화는 과신뷰 기사를 위해 추천을 받아 보게 되었다. 영화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갖지 않기 위해 아무 정보도 알아보지 않았다. 정말 제목만 알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호화로운 캐스팅이 눈에 들어왔다. 장르도 모르고 보기 시작했는데, 블랙코미디라는 걸 금방 알 수 없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되었다. 어떤 장면에서는 눈물이 나왔다. 영화가 끝난 후 먹먹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내내 질문이 머릿속을 굴러다녔다.  ‘왜 이 영화를 추천하셨을까? 과신대와 이 영화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인터넷에서 리뷰를 찾아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기후위기에 대한 영화라고 하였다. 하지만 난 공감이 되지 않았다. 기후위기라고 한 사람의 속뜻은 어쩌면 ‘불가항력으로 닥칠 미래 재난’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그렇게 말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난 이 영화를 보고, 곱씹어보고 하는 가운데, 한 가지 대사가 자꾸 가슴을 울렸다.  “제발 과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라고!”

 


주인공이 답답함에 목청이 터져라 외치던 대사이다. 지구멸망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각각 달랐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근거로 삼은 것은 ‘정부의 발표’ 또는 ‘자신의 신앙’이었다. 아무도 과학자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직접 자료를 제시해도 믿지 않았다. 처음에는 과학자들의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상했고, 이것을 발판으로 삼아 돈을 벌려는 정치인들도 이상했다. 종말이 다가오는데 사람들은 음모론을 제기했고 누구도 진지하지 않았다. 나 같았으면 어땠을까? 나라면 저 상황에서 과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까? 객관적인 자료와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과학자들을 믿지 않았을까?

예수님이 오셨을 당시에도 그랬다.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았고, 어떤 사람들은 광인이라 여겼으며, 어떤 사람들은 정치적 지도자로 여겼다. 과연 예수님을 구주로 인식한 사람은 몇이나 되었을까?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 이유는, 영화에서 과학자들이 근거자료를 제시하듯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신격을 증명하는 자료로 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예수님의 경우든, <돈 룩 업>에서 과학자들의 경우든, 사람들이 증거자료를 무시한 건 동일했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보았다. 그래서 점점 다가오는 혜성의 존재를 미처 인지하지 못했고, 그것이 시야에 들어왔을 때에야 비로소 과학자들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문제는 그 뒤에 일어났다. 종말에 대비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극단적으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여느 종말영화에서 나오듯이 거리는 생을 포기한 사람들의 ‘막가는 삶’으로 도배되었고, 부유한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살길을 모색하기 바빴다. 사랑과 평화라는 단어는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날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영화 <타이타닉>에서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듯했다. 가족도 뿌리친 채 자기 안위만 챙기는 사람들의 반대쪽에는 마지막 순간을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화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처음 예수님을 알았을 때 나는 근본주의자였고, 문자주의자였다. 세대주의를 믿었다. 나는 한 번 구원받았기 때문에 구원이 취소되지 않으며,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천년왕국에서 살 것이라 믿었다. 죽으면 무조건 천국에 간다고, 그래서 이생에서는 나중에 천국에서 받을 상급을 위해 무조건 참고 희생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일단 평안이 없었다. 내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애써 부인해봤지만 평안이 찾아올 리 없었다. 눈에 보이는 혜성을 바라보며 ‘저건 혜성이 아니야.’라고 자기세뇌를 하거나, 혜성이 다가오는 걸 알면서도 위를 보지 않으며 혜성이 없는 것처럼 생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질문은 다시 돌아간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근본주의자요 문자주의자였을 때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했다. 그래서 쉽다고 생각했지만, 삶이 녹록지 않았다. 지금은 내가 믿었던 모든 것에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대답은 모른다. 하지만 희망이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믿음으로만’ 보고 살아왔던 세계에서 한 발 내디뎌, ‘과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과신대를 알게 된 지 약 3년이 되었다. 그동안 내 생활은 많이 변했다. 과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더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누구나 아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알려고 하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더 이상 무언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자기가 알아온 것에 기대어 살아가고,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이다.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때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전도가 효과적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런 식의 전도가 오히려 사람들의 적대감만 부추긴다. 정말 예수그리스도를 전파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삶에서 녹여낸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무조건적인 믿음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물론 지식만으로도 불가능한 것이다. 나는 아직 어떤 답도 알 수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알려고 한다.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지식이란 성경만 죽어라고 읽는 것은 아니다. 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하나님을 알아갈 때, 내 삶에 풍성한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돈 룩 업>을 보면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글 | 이혜련 편집위원(1221hannah@hanmail.net)

아들 둘, 딸 둘과 하루하루 인생을 고민하는 평범한 주부. 하나님과 삶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다가 과신대를 만나 초보 기자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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