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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과신 Q

[과신Q] 13.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인가요?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5. 26.

 

우리가 짜장면과 짬뽕 중 하나를 선택하는 행동은 자유로운 결정일까요? 아니면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결정되어 있지만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착각하는 것일까요? 많은 분이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관계에 관해 묻습니다.

 

이 세계가 시계처럼 인과관계에 의해 빈틈없이 돌아간다면 자유의지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어디선가 짜장면을 봤다거나 누군가 짜장면을 언급했다거나 구수한 짜장면 냄새를 맡았거나 특정 원인이 짜장면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면 그 선택은 나의 의지가 아닙니다. 애초부터 다르게 행동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필연과 결정론의 입장은 자유의지를 부정합니다. 반대로 이미 규정되어있는 원인 때문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유롭게 뭔가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면 자유의지가 작동하는 셈입니다. 짜장면을 선택하게끔 모든 조건이 갖춰져 있어도 짜장면 대신 짬뽕을 선택하는 건 나의 자유의지입니다.

 

 

자유의지에 관한 여러 논쟁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문제는 철학과 과학을 비롯한 사회학과 신학 안에서도 커다란 논쟁거리입니다. 과학자들도 서로 다른 견해를 드러냅니다. 가령, 이론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은 레너드 믈로디노프와 함께 쓴 《위대한 설계》에서 행성의 궤도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동도 물리법칙에 따라 지배되고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자유의지는 착각에 불과하고 인간은 생물학적 기계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다만 호킹은 인간 뇌 구조가 매우 복잡하기에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할지 예측할 수는 없다는 점을 언급합니다. 마치 날씨 현상과 비슷하다는 말이지요. 날씨는 정확하게 결정론을 따르는 현상이지만, 한 달 뒤 날씨를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인간의 선택도 결정되어 있지만 예측할 수 없어서 마치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는 게 호킹의 입장입니다.

 

반대 입장도 있습니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는 《제3의 생각》에서 호킹이 종종 과학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고 지적하면서 호킹의 주장을 비판합니다.

 

호킹은 자유의지의 환영을 인류가 대략 10의 25승(1025)개의 입자를 포함한다는 사실 때문이라면서, 사실상 사람이 무엇을 하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자유의지란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우리의 의식적 경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내가 이 리뷰를 쓰면서 나는 경험을 하고 있고, 이런 경험은 물리 법칙이 내가 이런 결정들을 하고 싶어 하는 걸 피할 수 없게 만든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에는 언제나 10의 22승(1022)개 정도의 많은 입자가 포함되는데 그것들이 무엇을 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들이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결정을 내리는 의식적인 경험을 한다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와인버그는 인간 행동이 물리법칙을 따르기는 하지만, 인간은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과정을 계속 의식적으로 경험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의식적 경험을 수반하는 자유의지는 결정론에 따라 움직이는 구름이나 날씨와 같은 복잡계의 현상과는 다르다는 뜻입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행동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이 많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문제는 명확하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뇌과학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아직 요원해 보이고 그 결과들은 종종 과장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벤자민 리벳이 1983년에 수행한 실험 결과가 그렇습니다. 리벳은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는 실험을 하면서 행동을 주관하는 뇌 영역의 전류를 측정했습니다. 실험대상자가 버튼을 누르기로 결정하기 전, 정확히는 수백만 분의 1초 전에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발휘하기 전에 이미 뇌가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이 결과가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증거라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리벳의 실험은 여러 오류를 안고 있으며 명확한 해석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커다란 논란을 일으킨 이 실험 이후에 많은 후속 연구가 뒤따랐지만 여전히 논쟁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손가락을 까딱이는 수준의 의지를 다룬 이 단순한 실험을 바탕으로 복잡한 의식의 경험과 같은 물리적 조건에서 의지적으로 다르게 행동할 자유의지의 가능성을 모두 부정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결정론에 구속되지 않는 인격적 지성

 

자유의지는 오래된 철학적 주제이기도 합니다. 현재는 과학으로 엄밀히 밝히지 못하는 문제라서 형이상학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지요. 만일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으며 모든 행동은 이미 주어진 조건들에 의해 결정될 뿐이라면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합니다. 가령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그 범죄는 나의 선택이 아니라 이미 물리적으로 결정되어 있었던 거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뇌 결정론은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만드는 상황을 가져옵니다. 물론 필연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살인자라고 해도 여전히 사회적 합의로 처벌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그에게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그가 의지적으로 결정한 행동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이 문제가 던지는 사회적 함의는 광범위하며 인간 존재에 대한 생각을 근원적으로 바꾸도록 요구합니다.

 

자유의지를 주장한다고 해서 결정론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자유롭다고 해도 물리적 우주의 인과관계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오늘 밤 달 표면에 가서 저녁을 먹겠다고 내 마음대로 결정한다고 해도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습니다. 자유의지는 과학적 결정론의 틀 안에서 주어진 범위를 갖기 마련입니다. 중국음식점에 가서 짜장면이나 짬뽕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피자나 초밥을 선택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존 로크가 말한 철학적 자유는 감옥에 갇혀있지 않고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만, 인간은 어떤 면에서는 물리적 우주의 인과관계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물리적 우주에 속해 있다고 해도 주어진 선택의 범위 안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는가 물어야 합니다. 만일 시계처럼 촘촘하게 인과관계가 작동하는 우주라면, 인간의 뇌와 신경망과 모든 물리화학적 작용들이 톱니바퀴처럼 빈틈없이 결정론에 따라 작동한다면 과연 자유의지가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까요?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시계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호킹의 표현대로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자유의지의 작동방식은 복잡합니다. 구름과 같은 복잡계와 양자역학의 비결정성은 둘 다 인간의 예측 가능성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날씨는 결정론을 따르지만 너무나 복잡해서 예측이 불가능하고, 전자 하나의 행동은 무작위적이라 예측이 불가능하지만 많은 전자를 함께 다루면 통계적 예측이 가능합니다. 아마도 이런 과학의 한계가 자유의지가 작동될 가능성을 보여주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원론을 주장하는 데카르트로 돌아가자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물리적 우주의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인간 의식은 주어진 조건에 따라 결정하지 않을 자유로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리적 원인과는 다른 측면의 원인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 인간 욕망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발휘된 자유의지는 지구 생존에 위협이 되었지만, 기후 위기 상황에서도 인간은 위기를 넘기고 지구를 지키는 쪽으로 자유의지를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50억 년 뒤 태양이 폭발하면 지구를 지킬 수 없겠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우리는 지구 운명을 바꿀 자유의지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성의 의미는 바로 이 점에서 중요합니다. 지성은 단순한 정보처리능력을 말하지 않습니다. 정보들을 종합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가치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고차원적인 의식의 활동이 존재합니다. 그 의식은 주어진 정보에 따라 ‘예’와 ‘아니오’를 결정하는 기계적 반응과 달리, ‘예’라고 판단되는 상황에서도 ‘아니오’를 선택할 수 있는 의지적 지성입니다. 결정론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의식의 작용이 바로 지성의 특징이며, 지성은 그래서 인격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감각된 정보를 넘어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상상력, 가치를 만들어내고 판단하는 추상적 사고능력, 생존과 생물학적 이기성에 제한되지 않고 고귀한 아름다움과 감동, 위대한 가치를 위해 자기 소유를 나누고 희생하는 의지적 결정이 바로 인격적 지성의 힘입니다. 인격적 지성은 바로 신으로부터 공유된 형상이며 신의 대리자로서 인간이 갖는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학이 더 발전해서 뇌 구조와 작동방식이 다 밝혀지면 자유의지가 허상임이 밝혀질까요? 아니면 자유의지에 관해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혀내지 못한다고 해도 물리적 우주 안에 자유의지가 설 자리가 없다고 보는 게 옳을까요? 아니면 결정론의 세계 안에서 자유의지가 작동한다고 보는 게 옳을까요? 만일 자유의지가 작동한다면 자연법칙에 의해 결정론으로 움직이는 이 우주에서 인간의 의지는 독립적인 원인이 될까요? 마치 신의 의지가 자연계에 영향을 미치고 작동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유의지에 관해 스티븐 호킹과 내기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쪽에 백만 원을 걸겠습니다. 만일 자유의지가 있다면 제가 내기에서 이깁니다. 반대로 자유의지가 없다고 밝혀진다면, 제 주장은 제 의지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결정되어 있던 행동이기 때문에 제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그래서 백만 원을 물어내지 않아도 도덕적 책임을 제게 물을 수 없을 것입니다.

 

 

출처 : 복음과상황(http://www.goscon.co.kr)

 

 

글 |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과학과 신학의 대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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