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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과신 Q

[과신Q] 12. 우주는 합리적인가요?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5. 10.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과연 어떤 곳일까요? 과학자들은 자연세계를 합리적이라고 가정합니다. 내부 원인에 의해 발생한 인과관계로 물리적 우주의 모든 현상이 발생하고, 그 결과로 미래가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수학적 표현이 자연법칙입니다.

 

하지만 우주는 합리성만으로 다 설명되지 않습니다. 모호성도 분명 존재합니다. 빅뱅은 어떻게 발생했는지, 지구 최초의 생명체는 자연적으로 발생했는지 혹은 외계에서 유입됐는지 등은 현재의 과학으로 엄밀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자연세계의 합리성은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반대로 그 합리성의 한계도 뚜렷하게 인식되었습니다. 상대론과 양자론으로 대표되는 물리학의 혁명은 여전히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지만 일상 경험에 위배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러왔습니다.

 

상대론은 절대적 시공간 개념을 무너뜨렸습니다. 고전물리학의 대가 아이작 뉴턴에게 “블랙홀 근처로 우주여행을 다녀왔더니 딸이 나보다 더 나이를 먹고 늙어버렸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겁니다. 양자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자역학이 발전하면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현상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전자의 운동은 확률을 따르기는 하지만 제멋대로입니다.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원인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인과론을 깨는 듯한 미시세계의 현상을 본 아인슈타인은 숨은 변수가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전자들의 행동은 통계적으로 보면 인과적이지만, 전자 하나를 보면 어떤 원인으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마치 전자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 듯합니다.

 


합리성과 모호성에 대한 세 가지 견해

 

우주는 합리성과 모호성의 두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어떻게 두 얼굴을 함께 이해할 수 있을지 세 가지 견해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자연세계가 완전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든 현상은 자연법칙에 따라 인과적으로 작동하고 모호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현실적 모호성이 있을 뿐입니다. 우주는 자연법칙을 따라 작동하지만 과학이 아직 덜 발전했기 때문에 우주의 일부가 모호해 보일 뿐입니다. 과학이 발전하면 이런 모호성은 점점 사라지고 우주는 완벽히 이해될 것입니다. 개기일식이 일어나면 하늘이 노했다고 여기던 시대에 이야기되던 자연의 모호성은 과학의 도움으로 사라졌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모호성도 그렇게 사라질 것입니다.

 

둘째, 자연세계는 완벽하게 인과관계를 따르지만, 인간 지성의 한계 때문에 모호성을 다 정복할 수는 없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과학이 발전하면 이해 불가능한 영역이 줄어들지만, 그만큼 더 이해 불가능한 영역이 새롭게 등장합니다. 합리성의 증가만큼 모호성이 늘어납니다. 원칙적으로 우주는 합리적이지만, 우리의 지성적 한계 안에서 보면 우주는 여전히 모호합니다. ‘인지적 모호성’입니다.

 

셋째, 우주가 합리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호성도 갖는다는 견해입니다. 그 모호성은 과학이 아직 풀어내지 못했을 뿐인 현실적 모호성이나 인간의 지성적 한계로 파악할 수 없는 인지적 모호성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주는 자연현상의 인과관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어떤 모호성을 품고 있습니다. ‘실재적 모호성’입니다. 우주에는 합리성과 모호성이 공존합니다.

 

 

모호성을 인정하면 합리성이 깨질까

 

그렇다면 합리성과 모호성의 양립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선, 모호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합리성이 깨지지는 않습니다. 잘 밝혀진 자연법칙을 부정하거나 근대과학 시대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합리성으로 설명되지 않은 빈틈을 모호성으로 채우자는 말도 아닙니다. 인형극의 인형들이 작위적으로 움직이듯이, 자연계 밖의 원인을 상정해 작위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도록 허용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입장은 ‘간격의 신’이라는 오류를 범합니다. 자연과 초자연을 뒤섞는 방식은 과학자들이 수용할 만한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없으며, 합리성과 모호성의 공존은 우주를 반씩 나누어 갖는 방식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보다는 모호성이 합리성을 포괄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혹은 합리성은 모호성의 근사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면서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없습니다. 한반도라는 제한된 지역만 보면 거의 편평하고 휘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구 전체는 둥글지만 작은 지역은 편평하다고 근사할 수 있습니다. 우주는 모호성을 갖지만 제한된 영역에서는 합리성으로 근사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과학자들이 찾아내는 합리성, 즉 인과관계와 자연법칙은 다만 인간의 지성 안에서 재구성되는 수학적 표현일 뿐이며, 자연세계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들도 있습니다. 우주라는 실재에 관해 과학자들은 합리성으로 근사되는 내용만 알아내는 중이라고 보는 겁니다.

 

 

우주 전체는 인과관계의 총합인가

 

블랙홀의 대가 존 휠러는 자연법칙이 우주에 출현한 생명체에 의존한다고 봤습니다. 자연법칙은 우주가 탄생할 때 원래 존재했거나 누군가가 우주에 집어넣은 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생겨났다는 것이 그의 견해입니다. 인간이 우주를 경험하면서 자연법칙을 하나씩 만들어갑니다. 그래서 자연법칙이 100% 맞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우주를 관측하는 경험에 따라 자연법칙은 점진적으로 진화합니다.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은 괴델의 불완정성 정리가 보여주듯이 과학을 통해 우주를 다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우주의 구조가 몇 가지 물리학 법칙으로 명확하게 환원될 수 있다는 주장에도 반대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우주는 단지 물리법칙들로 환원하여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물리적인 우주 전체가 몇 가지 방정식으로 기술될 수 있다면, 그런 우주를 만든 신은 상상력이 부족한 신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우주가 합리적이지 않고 모호하다니, 반론을 제기할 분들도 있겠습니다. 21세기 현재의 제한된 과학으로 우주 전체가 과연 인과관계의 총합인가, 아니면 인과관계로 설명되지 않는 모호성을 갖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우주는 꽤나 합리적이지만 그 제한된 영역 내에서도 전자의 운동처럼 모호성이 발견됩니다. 더군다나 인간의 경험을 넘어서는 우주 전체에 모호성이 없다는 주장은 과학으로 검증되지 않는 가정일 뿐입니다.

 

 

우주에 담긴 모호성의 정체

 

그렇다면 우주에 담긴 모호성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지성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성은 단지 정보처리 능력이 아니라 의지와 관련됩니다. 의지는 자연세계의 인과관계로 결정되지 않으며, 물리적 원인에 제한되지 않는 자유로운 결과를 낳습니다. 지성적 존재인 인간이 없었다면 기후변화 문제는 이렇게 심각해지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인과관계가 엄격히 적용되는 우주라면 자유의지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이미 주어진 원인들에 의해 결정되고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는다고 착각할 뿐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 중에는 스티븐 호킹처럼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자유의지가 없다고 엄밀하게 밝히지는 못했습니다. 자유의지의 문제는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자유의지를 가진 지성적 존재는 자연세계의 촘촘한 인과관계의 구조 안에 새로운 원인을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의지적 지성은 자연세계의 인과관계가 작동하는 결정론적 방식과 매우 다릅니다. 그래서 자연의 인과관계와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기후 위기도 그렇습니다. 그대로 두면 지구의 존재는 위협받겠지만, 우리의 지성적 결정을 통해 자연의 원인을 거스르는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자연세계의 모호성은 지성과 연결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꽤나 모호합니다. 자연법칙과는 달리 똑같은 물리적 상황에서도 인간은 지성적 판단에 따라 다르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예측 불가능하고 이해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고귀한 가치를 위해 희생하는 일은 주어진 원인에 따라 기계적으로 발생하는 결과나 동물들의 행동이 가져오는 결과와는 매우 다르게 귀결됩니다.

 

인간의 지성을 우주적 지성으로 확장해보면 어떨까요? 우주의 모호성은 우주적 지성과 관련됩니다. 그 지성은 단지 물리법칙의 총합과 같은 비인격적 원인이 아니라 인간의 지성처럼 의지를 가진 어떤 인격적 지성입니다. 그 우주적 지성은 지구의 생존을 위협하는 인간의 지성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심오한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지성의 작용은 자연법칙의 인과관계에 비하면 종종 모호하고 이해할 수 없지만 자연법칙과 공존하는 모호성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적 관점에서 보면 자연세계의 합리성과 모호성을 이해하는 일은 자연과 신의 관계를 이해하는 일과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우주적 지성은 자연세계의 합리성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우주의 모호성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 우주적 지성, 의지를 갖는 인격적 지성을 믿는 게 우리의 신앙이 아닐까 합니다.

 

 


 

■ 더 읽기

 

Infinite in All Directions

프리먼 다이슨 지음 / Harper & Row 펴냄

 

종교와 과학을 둘러싼 논의를 포괄하는 이 책은, 우주와 자연세계의 다양성, 생명의 기원 등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정리하고 생명과 우주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출처 : 복음과상황(http://www.goscon.co.kr)

 

 

글 |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과학과 신학의 대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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