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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기자단 칼럼

닮은 듯 다른 우리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2. 7. 8.

닮은 듯 다른 우리를 읽고 

 

『닮은 듯 다른 우리』|김영웅 지음|선율 펴냄|248쪽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고등학교 시절 읽은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책의 분량이 많고 복잡하여 책의 내용을 표면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었다.


원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셋째 아들 알료샤를 주인공으로 하여 2부로 완결되었을 예정이었으나,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남은 것, 도스토옙스키는 러시아 정교 신자였다는 사실 등은 『 닮은 듯 다른 우리』를 읽으며 작품 외적인 정보로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유전자에서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유전 형질이 표현형으로 드러나는 생물학적 내용에 근거한 작품 해석을 통해 캐릭터에 관한 더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기회가 될 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내용을 곱씹어 보면서 다시 읽어 볼 생각이다.


카라마조프 4형제는 표도르의 분열된 자아를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이 흥미로웠다. 4형제 중 알료샤는 아버지 표도르와는 닮은 구석이 없는 신실한 박애주의자이다. 표도르와 닮은 형제를 찾자면 후반부에, 스메르쟈코프 대신 유형을 받음으로써 순교자가 되는 드미트리와 비슷한 면이 있다. 

 


알료샤는 표도르 내면에 있었을 이타적이고 신앙심 깊은 자아를 상징하고, 표도르를 살해한 스메르쟈코프는 자기 파괴에서 쾌락을 느끼는 표도르의 특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반과 드미트리도 "무정 DNA", "호색 DNA" 등 각각 표도르를 닮은 부분이 있다. 이후 이반과 드미트리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게 되고, 2부의 주인공이 알료샤였다는 점에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표도르의 성장, 더 크게 보면 한 인간의 내면세계에서의 갈등과 성장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는 『데미안』에서 내면의 선악 사이에서 갈등하다 자신의 또 다른 자아였던 데미안을 통해 성장한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와도 결을 같이한다. 표도르를 가장 닮았다는 장남 드미트리는 사실 내면에 고결함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이처럼 "카라마조프적" 기질을 가진 형제들이 책의 후반부에서 죽거나 갱생하게 되는 것을 보면 도스토옙스키의 인간에 대한 희망과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지 않고, 환경을 자신에게 맞춰 변화시키기도 하고 환경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의 과정에서 인간 고유의 특성인 문화가 탄생한다.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첫째인 드미트리가 "카라마조프적"인 본성에 맞서 내면의 문을 열고 나와 갱생한 것처럼, 유전적, 물질적 환경에 안주하지 않고 본인의 노력으로 삶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 『데미안』 中)

 

 

인간의 특별함이란 무엇일까?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질문을 던져 본다. 유전형질 중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우성이라면 우성과 열성은 빈도와 통계로 드러난 다수성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좋고 나쁨의 우월함과 열등함의 가치가 개입될 수 없다. 이는 더 나아가 인간의 지능이 다른 동물보다 높다는 이유로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다거나 다른 생명체보다 특별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말로 확장된다. 우린 같다 다르다, 혹은 옳다 그르다, 혹은 정상과 비정상 등의 이분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유전자에 새겨진 형질은 이미 굳어지고 결정지어진 운명이 아니라 얼마든지 환경적인 요소와 개인의 노력과 의지에 의해서 달라지고 바뀔 수 있다.


인간의 다양한 특성은 선과 악으로 판단할 수 없다. 이전의 싱클레어처럼 이분법으로 편협하게 보는 세계는 반쪽짜리 세계이다. 열린 사고를 해야만 비로소 완전한 세계(신성)에 도달할 수 있다. 열린 사고를 위해서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깔린 기존 사회 통념을 바꾸려는 변화 의지와 소수자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이 인간과 여타의 동물을 구분 짓는 특성, 즉 인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글 | 노은서 편집위원

과학과 신학에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공부하고 서평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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