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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기자단 칼럼

갈릴레오의 두 목소리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11. 10.

과학과 종교의 문제를 다룰 때 항상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갈릴레오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 모델에서 갈등관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독립의 길로 들어서게 한 인물로 갈릴레오를 꼽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 권의 책을 주셨는데 성서와 자연이라고 말한 그는 자연의 언어가 수학이므로 그 언어를 알아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자연을 수학화하는 데 공헌을 한다.

 

역사란 현재시점에서 과거를 조명해 보면 그 당시의 상황으로 인해 제기된 질문과 주장들이 합당했더라도 거기에는 모호성과 부정성을 내포한다. 기울어진 비탈길에서 굴리는 돌멩이는 가야할 방향은 하나의 필연성이다. 예컨대 수학적 언어가 추상화시킨 이 세계가 마치 우리가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실제의 세계와 동일시되어버리고, 데카르트, 뉴턴으로 이어지면서 수학으로 보여지는 물리학은 기계론적인 세계관과 이신론의 문을 열어놓는다. 결국, 갈릴레오가 굴린 돌멩이가 향하는 방향은 과학적 세계관과 무신론적 세계이다.

 

 

갈릴레오, 그는 대체 무엇을 말했길래 종교재판을 받은 것이 ‘갈릴레오 사건’으로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것일까? 그의 주장과 그 목소리가 초래한 또 하나의 목소리는 무엇일까? 표면에 드러난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그가 살던 그 당시의 배경이 어떠했는지를 알고서 그의 종교 재판 사건을 다시 보면 큰 덩어리의 빙산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갈릴레오 사건은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616년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는다.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과학적 사실을 거론한 진리의 문제에 대한 판결이다. 태양이 세상의 중심에 있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성서의 여러 대목에 드러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교리에 위배되는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한 판결이다. 상황과 맥락적으로 볼 때 종교와 과학 진영이 확연하게 구별되지 않고 섞여 있었고, 과학적, 인식론적, 철학적, 종교적, 신학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개인적, 심리적 요인이 다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종교가 과학을 탄압한 사례라고까지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1633년에는 코페르니쿠스 주의를 금지한 교회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는다. 이는 교회의 권위를 따르지 않았다는 법적 태만의 문제였다.

 

 

갈릴레오가 살던 그 당시 배경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는 한 마디로 비운의 행운아다.

 

당시 배경을 이루는 요소들에는 르네상스와 인쇄술이 있고,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가 세를 갖추고 있었지만, 가톨릭은 트렌트공의회를 통해 철저한 보수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성서를 해석하는 주체와 권위에 대해 개신교와 극도로 대립상태였다는 점에 주목하기 바란다. 이탈리아는 가톨릭의 본산지고 대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지배적이었는데 동방 정교회 지역의 학자들과 헬레니즘 시대의 고전들이 유입되면서 고대 원자론, 스토아 철학, 회의주의, 플라톤 철학이 부활하고 있었다.

 

천문학에 대두된 문제도 심상치 않았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문학에 따라 우주를 해석했고, 신학자들과 교황들이 그의 해석을 승인했기 때문에 천동설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데 태양이나 달, 금성, 화성 같은 천체의 크기와 밝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게다가 행성들이 한 방향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도 가는 경우가 관찰되었는데 이를 설명하기가 난감했다. 역사는 여기서 코페르니쿠스의 전회라고 일컫는 순간을 만난다.

 

당시 행성의 물리적 원리를 설명하는 것은 자연철학의 일이고 천문학이나 수학은 물리학과 자연철학보다 열등한 학문이었다. 그런데 수학으로 천문학을 설명하고 지구가 하나의 행성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태양을 중심에 두고 모든 천구가 일정하게 회전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갈릴레오의 목소리는 무엇을 말하는지 들어보자.

 

갈릴레오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지지했고 여기다가 신학자가 가진 성서 해석의 주도권에 의문 제기함으로써 과학과 신학의 관계를 역전 시킨다. 1615년 크리스티니 대공비에게 갈릴레오는 편지를 보내는데 지구가 고정되어 있다는 성서의 기록들, 예컨대 시편 104편 5절-(땅에 기초를 놓으사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전도서 1장 5절 ,여호수아 10장 12~13(아모리 족속과 싸우던 날 태양이 멈추었다는 기록) 에 대해서 언급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세기의 문자적 의미>를 14구절이나 인용하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반대하는 이들이 성서를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과학의 이론과 성서를 조화시키기를 원했다. 성서와 과학적 설명이 충돌을 일으킨다면 성서가 우선이되 검증된 과학적 사실이 문자주의적으로 해석된 구절과 갈등을 일으킨다면 성서 구절을 재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갈릴레오가 보기에 성서는 하늘나라 가는 길을 말하고 과학은 하늘이 움직이는 길을 말하는 것이었다. 신앙의 문제와 자연현상의 문제를 분리함으로써 성서는 은유적으로 이해해야 하며, 자연의 문제를 논할 때는 성서구절의 권위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 경험들과 필연적인 논증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 상황은 신학이 방법과 원리에 있어서 다른 학문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지 않다고 주장한 셈이 되어버린다. 신학보다 열등한 것으로 여기던 자연탐구 학문을 근본 원리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이룬다. 그는 신학이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은 그 주제 때문이지, 주제가 고상하다고 해서 학문의 위계 서열에서 신학이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갈릴레오의 목소리는 결론적으로 신학과 다른 학문은 상하관계가 아니라 창조주의 영광을 함께 드러내는 데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논증된 경험적 지식이 성서 해석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종교에 대한 과학의 우위라는 근대의 문을 열어버린 필연성으로 들려진다.

 


 

글 | 백우인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새물결플러스에서 튜터로 활동하고 있다. 과신VIEW에서는 과학과 예술과 신학이 교차하는 지점을 글로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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