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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기자단 칼럼

탈레반, 원리주의 그리고 신앙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8. 24.

 

탈레반, 원리주의 그리고 신앙

 

 

1. “탈레반은 인류 문명의 수치다” 모 라디오 아침 보도 프로그램에서 한 전문가가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설명하면서 탈레반의 무도한 만행을 규탄하며 한 말이다. 탈레반은 종교의 이름을 걸고 하는 행동을 통하여 왜 그런 악명을 얻게 된 걸까? 그들이 믿는 이슬람교가 비인륜적인 악마의 종교이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전 세계의 인구의 1/4이나 되는 20억 명의 인구가 무슬림이고 지금도 가장 성장 속도가 빠른 종교라는 사실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 많은 이슬람 국가들이 현대 사회에서도 정교의 분리를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신정국가 체계를 유지하려고 하여 많은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비교적 민주적인 정치를 통하여 안정된 사회를 이루고 있는 나라가 더 많다.

 

2. 특히 탈레반이나 다른 폭력적인 이슬람 단체들이 악명을 떨치는 이유는 그들이 단지 이슬람이기 때문은 아니고, 그들의 행동이 극단적인 원리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원리주의자(또는 근본주의자)는 그들이 믿는 종교의 경전에 있는 내용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1400년 전에 계시되고 그 시대의 문화와 풍습이 적용되어 만들어진 경전인 꾸란의 내용을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글자 그대로 믿고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3. 이슬람 사회의 샤리아법은 꾸란을 실생활에 적용하도록 만든 법이다. 문제는 신정국가에서는 이러한 종교법을 사회 실정법으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 국가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원리주의자들이 지배하는 나라는 신정국가 체제를 통하여 그렇게 한다.

 

그러나 다 반인륜적이지는 않다. 샤리아법의 적용 수준이 나라마다 다르다. 그것은 샤리아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한다. 대부분 이슬람 국가들은 사회 발전에 따라 점차 인권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4. 그러나 탈레반의 경우는 샤리아 법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아주 극단적으로 적용한다. 위반하면 대부분 극형에 처한다고 한다. 절도를 한 경우 손을 절단해 처벌하며, 불륜을 저지른 경우 돌로 쳐 죽게 하는 가혹한 형벌이 허용된다.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처럼 여기고, 10세 이상 교육 금지, 강제결혼 등을 허용하고 있다. 그리고 남자를 성적으로 유혹하면 안 된다고 얼굴을 가리고 몸 전체를 덮는 옷을 입게 한다.

 

또 남성들은 수염을 깎으면 안 되고, 텔레비전과 음악, 영화 같은 오락을 금지하고 있다. 예배나 종교활동을 철저히 실천하게 하고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종교의 계율이 사회의 모든 제도보다 앞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5. 그러면 이러한 원리주의자는 이슬람에만 있는 것인가? 어느 종교에나 다 있다. 이스라엘에 가면 유대교 원리주의자들이 있다. 기독교에도 근본주의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폭력적이지는 않다. 다른 종교를 믿는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정교가 분리되어 있어 종교의 계율을 일반 사회에 함부로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도 중세 이전에 기독교 교리가 정치를 우선할 때는 반인륜적인 일들을 많이 자행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정교가 분리되고 인권의식이 성숙하면서 거의 사라졌다.

 

6. 그러나 현대의 기독교에도 여전히 원리주의 요소를 숨어 있고, 이는 매우 위험하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신자들의 생각을 통하여 일반 생활까지 지배하려 들기 때문이다. 많은 신자들은 일반적인 종교의 계율이나 가르침이 사회의 법이나 관습에 충돌할 때 종교의 가르침을 먼저 따르는 것이 좋은 신앙생활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신앙행위가 실정법이나 문명과 충돌할 수도 있고, 반사회적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나치나 미국의 KKK의 반유대주의나 인종차별이 그랬고, 특정 종교집단에서 수혈, 국기에 대한 경례, 집총 등을 거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7.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백신 접종을 거부하거나, 방역 대책에 따른 대면 예배 금지를 종교 탄압이라고 주장하면서 거부하는 것도 이에 해당될 수 있다. 진화이론의 학교 교육 금지를 시도하는 거나,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차별금지법을 성경의 반동성애 교리를 적용하여 끝까지 반대하는 것도 마찬가지 경우가 될 수 있다.

 

물론 동성애는 결국 성 관련 문제이고 가족제도나 사회 풍습과 충돌될 수 있는 문제인데, 차별금지라 이름으로 우리와 풍습과 윤리기준이 다른 서양 사회의 기준에 맞추어 그렇게 공공연하게 사회 문제화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것은 종교의 교리와는 다른 별도의 차원에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 생각한다.

 

8. 또 일부 목사님들은 휴머니즘을 인본주의라 하면서 공공연하게 거부한다. 물론 인본주의가 신을 거부하는 수준까지 가는 거는 신앙인으로서 받아 들일 수 없는 심각한 문제이지만, 휴머니즘의 평등과 인권 중시 사상까지 인본주의라는 이름으로 거부하면 안 되는 것이다.

 

또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인 교회에서는 신본주의가 원칙이며, 교회 안에서 민주주의 절차는 따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근본주의적 신앙 태도로 볼 수 있다.

 

9. 원리주의, 근본주의자들이 경전에 있는 글자 그대로 따른다고 하는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문자나 문장 속에 들어 있는 근본 정신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때는 설령 상반되더라도 게의치 않는다. 이런 것을 기독교에서는 율법주의라 하는데, 예수님은 율법주의자들이 성경의 문자적 적용이라는 미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을 하기 때문에 사탄의 자식이라고 질책하셨다.

 

진리는 불변이지만 그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 만든 교리는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교리의 문자적 형식에 집착하다 보면 그 공동체는 진리에서 점차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10. 같은 종교를 믿는데 왜 이렇게 다양한 신앙의 모습이 존재하는가? 신앙이란 믿음의 세계이기 때문에 이해보다는 믿음이 우선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믿음의 수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어떤 교리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지만, 이거 저거 따지면서도 잘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태도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신앙이란 게 신을 향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자신을 납득시켜야 믿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는 게 너무 많아서 이거 저거 따져 가며 힘들게 신앙생활하는 사람보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쉽게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더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11. 문제는 이런 신앙 때문에 쉽게 어떤 정치적 목적의 희생물이 되는 순진한 신앙인들이다. 신앙이란 현세의 삶을 넘어 내세까지 연결되는 것이기에 때에 따라 죽음의 두려움조차 극복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사악한 종교지도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신도들에게  극단적인 근본주의 신앙을 주입하여 적에 대한 무차별 살인이나 자살테러도 불사하게 만든다.

 

역사적으로는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 유럽의 농민들이 그랬고, 나치의 광기에 협조한 교회의 성도들이 그랬다. 탈레반, 알카에다, IS에서 죽음은 곧 거룩한 순교라 생각하며 테러에 뛰어드는 젊은이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종교전쟁은 다 그런 맥락에서 일어난다고 보면 된다.

 

12. 사실 종교와 관련하여 우리 생각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국가와 사회를 미개한 사회라고 무조건 비난만 할 거는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20년이나 1,000조가 넘는 천문학적인 돈을 퍼붓고도 빈손으로 나가는 것은 시사하는 점이 크다.

 

미국이 그렇게 자랑하는 합리적, 민주적, 윤리적, 인권적인 제도와 사상이 아프가니스탄의 사회에는 전혀 긍정적 영향을 주지 못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서구사회에서 주장하는 보편적 기준이 그 나라에는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이걸 그냥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부패했기 때문이라거나 탈레반의 폭력이 무서워서 사람들이 굴복하고 있다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 다민족 사회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앞으로 아프가니스탄이 생지옥이 될 거라고 하면서 탈출 러시를 이루는 사람들은 탈레반이 속한 파슈툰족이 아니고 다른 민족에 속한 사람으로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종족 간 갈등이 있는 것이다.

 

13. 신앙은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가장 강력한 신념이다. 종교는 현세 뿐만 아니라 내세까지도 지배하는 강력한 이념이기 때문이다. 종교가 국가와 결합되면 그보다 더 강력한 힘은 없다. 종교를 국교로 인정하지 않는 나라들은 애국심, 민족, 왕 또는 통치자의 신격화 같은 방법으로 국가를 하나의 종교처럼 만들기를 원한다. 그러나 종교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현대의 정치이념 중 민주주의가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라 하지만 공동체의 내부 갈등을 잠재우고 하나가 되게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구성원 사이에 서로 이해관계가 상충되어 끊임없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나 현재까지도 많은 나라들이, 그 나라의 정치체제에 관계 없이, 여전히 종교 때문에 충돌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고 결속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다.

 

 

글 | 송윤강

과신대 기자단으로 활동하면서 과학강연, 영화, 도서 등 과학 관련 리뷰를 기고하고 있다. 현재 아름다운서당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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