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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콜로퀴움

[제26회 콜로퀴움] 박희주 교수 Q&A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5. 17.

 

질문 1

교수님의 글 중 아래와 같은 부분이 있는데요.

"과학은 결국 자연현상에 대한 인간의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역사적으로 변해왔고, 사회 문화적으로 형성되며, 철학적으로 정당성을 부여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확장해 개인적으로는 소위 과학적 진리 역시 자연현상에 대한 인간버전의 해석이 아닌가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1-1) 이런 교수님의 과학에 대한 언급에 대해 생각해 보면 과학 또는 과학이론은 객관적 자연현상에 대한 발견 또는 탐구를 정리하여 논증하는 작업이라는 저의 이해(세간의 이해?)와는 거리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자면, 생명진화 또는 진화이론의 경우에도 자연에서 관찰되는 여러 객관적 근거와 증거를 취합하여 정리, 논증하였을 때 그 논증이 그 시대에서는 다른 근거를 들어 반박하기 어려운 객관적 합리성을 지니게 되어 통용되는 과학 또는 과학이론으로 정립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요.

 

1-2) 교수님이 보시기에 만약 생명진화 또는 진화이론에 관한 "과학"이 자연현상에 대한 인간의 해석이라고 보신다면, 그 인간해석은 무엇이며, 그 인간해석 전의 자연현상 자체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자연현상에 대한 정리자체"와 "인간의 해석"이 서로 분리되는 것인지 아니면 섞여있는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답변

1-1) 아마도 가장 큰 거리감은 제가 과학이론을 “인간의 해석”이라고 했을 때 해석이 가진 속성인 가변성, 주관성과 과학이론의 보편적 이미지인 “객관성”이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해석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오늘날 “객관”이란 용어가 과학과 결합해 사용될 때 종종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함입니다. 과학은 객관적이고, 객관적 과학은 곧 과학적 진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흔히 읽힌다는 것이죠. 보다 더 객관적인 과학이론이 있고 덜 객관적인 과학이론이 있을 수 있는데 객관적 과학하면 그냥 진리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하게 객관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함입니다.

 

조금 더 설명해 보겠습니다. 한 과학자의 실험과 관찰로부터 가설이 탄생하고, 그 가설은 더 많은 과학자들의 추가적인 실험과 관찰로 점차 더 큰 신뢰성을 얻게 되면, 이에 비례해 그 가설의 객관성은 점진적으로 증대되어 이론이 되고 정설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과학자가 아닌 다수의 과학자들이 반복해서 특정 이론을 지지하면 그 이론의 객관성은 점차 증대된다는 말입니다. 철학에서는 이를 상호주관성이라고 합니다. 객관성은 다수의 개인들이 가진 주관성으로부터 생성된다는 겁니다. 다양한 개인들의 주관적 견해들에 공통된 부분이 모여 객관성을 형성한다는 것이지요. 다수의 주관적 견해가 한 방향을 지지할 때 이로부터 객관성이 생성된다는 겁니다. 이때 동일한 견해의 숫자가 커질수록 객관성도 증대되겠죠. 과학자 사회에서 특정이론에 대해 동의하는 과학자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그 이론의 객관성, 신뢰성은 증대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객관성을 완전한 객관성이 아닌 “상당한 정도의” 객관성으로 받아들인다면 “해석”과의 거리감은 많이 줄어들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주관과 객관을 말할 때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전제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물과 현상에 대한 우리의 관점은 100프로 주관 아니면 100프로 객관이란 양 극단만 존재하는 것으로 은연중 전제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관점은 사실은 양 극단을 잇는 스펙트럼상의 어느 지점에 존재하는데 말이죠.

 

이상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질문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생명진화 또는 진화이론의 경우에도 자연에서 관찰되는 1. 여러 객관적 근거와 증거를 취합하여 정리, 논증하였을 때 그 논증이 2. 그 시대에서는 다른 근거를 들어 3. 반박하기 어려운 객관적 합리성을 지니게 되어 통용되는 과학 또는 과학이론으로 정립되는 것이 아닌 가 하는데요.”

 

1의 여러 객관적 근거와 증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그렇게 만들어진 근거와 증거의 객관성은 어느 정도일까요? 관찰자와 실험자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그리고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그러한 정도의 객관성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기에 질문자께서도 “3. 반박하기 어려운 객관적 합리성”을 “2. 그 시대”로 제한 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소위 완전한 객관성이 아닌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과학이론이 완전한 객관성을 가진 이론이 아니라면 그 이론의 특성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해석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해석이라고 해서 완전히 주관적인 것은 아닙니다. 여러 과학자의 동의를 얻은 해석은 그에 상응하는 신뢰성을 지닙니다. 동의하는 과학자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신뢰성 또한 증가하겠지요. 이러한 해석은 객관적 진리는 아니지만 자연현상을 우리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이용하는데 유용한 지식입니다.

 

결국 거리감은 “객관”이란 용어와 “해석”이란 용어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객관을 말할 때 완전한 객관이 아닌 불완전한 객관을 의미한다면 그래서 객관성은 추가적인 증거와 근거를 통해 증가될 수도 있고 감소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객관이란 용어를 사용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자신도 모르게 “객관적” 과학이론이 과학적 진리의 수준으로 쉽게 오해되는 오류를 낳게 되며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굳이 해석이란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이러한 문제를 피하기 위함이며, 오늘날 과학에 대한 대중적인 관점이 한 쪽으로 치우쳤다고 판단해 이에 균형감을 불어 넣기 위함입니다.

 

 

1-2) 과학의 대상은 자연현상이며 과학은 자연현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보는 과학은 자연현상에 대한 “객관적 진리”라기 보다 자연현상에 대한 과학자의 해석이라는 것이지요. 진화이론에 대한 “그 인간해석”은 곧 진화론이 담고 있는 과학적 내용들이지요. 그러한 내용자체가 인간의 해석이니까요. 그리고 앞서 말했듯 이러한 해석은 아무나 마음대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과학자들이 진지한 연구결과 생성해낸 것입니다. 과학자 사회에서 큰 지지를 얻은 해석은 상당한 신뢰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질문자는 다음과 같은 전제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어떤 자연현상 X에 대한 과학이론 Y의 관계는 1:1 로 대응하는 관계이다. 다시 말해 자연현상 X에 대한 옳은 이론은 하나만 존재할 수밖에 없다. 과학이론이 해석이라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을 텐데 우리가 배운 과학은 그런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과학의 역사를 보면 동일한 자연현상에 대해 경쟁하는 여러 가설들이 등장하고 과학자 사회가 특정 가설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면 그 가설이 정설이 되는 과정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예컨대 20세기 들어 양자역학이 탄생할 때도 양자현상을 설명하는 다양한 경쟁가설들이 등장했고 그중 “코펜하겐 해석”이 과학자 사회의 가장 큰 지지를 받아 오늘날 정설로 확립되어 있습니다. 양자현상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등장했고 오늘날 코펜하겐 해석이 과학적 정설로 확립된 것이지요. 이러한 과정을 보면 특정한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여러 가설들이 존재하며, 과학자 사회에서 현재 옳은 것으로 지지하는 가설은 경쟁가설을 물리치고 이론의 지위를 획득한 가설이며, 이 이론 역시 미래에는 또 다른 이론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겁니다. 양자역학에서는 지금 현재도 코펜하겐해석을 위협하는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하며 경쟁하고 있습니다. 초끈이론이 대표적이지요.

 


질문 2

교수님의 강의를 잘 들었습니다. 진화와 창조에 관한 여러 의견이 있다고 소개를 해주셨는데요.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진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진화와 관련한 학계 담론에 있어서 소위 "유신론적 진화론"이라는 입장을 지닌 과학자가 있다면 (예를 들어 프랜시스 콜린스 및 이와 유사한 과학자로 분류될 수 있는 연구진 그룹들) 이들은 무엇을 중심에 놓고 논쟁하고 있는지요? 언뜻보면 유신론적 진화론은 진화 자체는 과학으로 수긍하고 그 다음 단계의 해석 영역에 있어서 유신론적 입장으로 진화를 해석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한데요. 교수님이 언급하신 것을 보면 과학 자체도 인간의 해석이라고 하신 면을 보면 제 이해가 좀 빗나간 것 같기도 하구요.

 

제 질문을 정리하자면, 진화 자체를 소위 '과학'으로 연구하는 학문영역에 대해 "유신론적 진화론"이라는 담론은 어떻게 이와 대화하고 담론을 주고 받는 것인지 현실적인 학계의 상황이 궁금합니다.

 


 

답변

1번 질문의 답변에서 말했듯 완벽하게 객관적인 과학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과학이론도 인간의 해석이라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이런 해석적 입장에서 본다면 진화론과 같은 과학이론은 과학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고 유신론적 진화론은 이념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해석적 담론의 차이는 뭐고 양자는 어떻게 대화할까요? 그리고 진화론의 경우 어디서 어디까지가 과학이고 어디서부터 이념일까요? 과학의 영역은 하늘이 정해준 것이 아니며, 일선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암묵적 규정에 의해 정해집니다. 어떤 논문이 과학이론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전문학술지에 출판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료과학자들의 심사과정을 거쳐야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 시대 과학자 사회가 공유하는 과학의 기준이 적용되고 이 기준을 벗어나면 그 논문은 탈락하게 되는 것이죠. 예컨대 텔레파시나 초심리, 창조과학 등은 그러한 기준을 벗어나는 내용이 되겠죠. 그리고 그러한 기준은 명문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과학자 사회가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기준입니다.

 

이번 강의에서 등장하는 생물철학자 마이클 루스는 그러한 기준을 객관적으로 명문화하려는 시도를 했고 이후 뜨거운 논쟁이 발생했죠. 명시적으로 확립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실제적인 기준은 분명히 존재하고 이러한 기준은 시대가 바뀜에 따라 변할 수 있습니다. 결국 과학이란 것도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려온 것이 아니고 과학자 사회라는 인간집단이 만든 산물이란 것이 저의 시각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시각만은 아니고 과학사, 과학사회학에서 널리 지지받는 입장입니다.

 

과학과 비과학의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에 과학과 과학 아닌 것과의 대화 역시 어떤 기준을 따라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관찰한 바로는 다양한 차원에서 정말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질문 3

저의 이해로서는 진화 자체를 정립된 과학이론으로 본다면 굳이 과학의 영역에 있어서 유신론적 담론이 차지할 portion은 크지 않아 보이는데요. 소위 유신론적 진화론은(이 또한 여러 부류가 있겠지만요) 진화사상 또는 과학철학과 같은 인접학문을 중심으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화를 연구하는 진화과학/생물학 과학연구자와도 서로 학적 담론을 주고 받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유신론적 진화론에 대한 담론은 과학의 영역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유신론적 진화론을 내용으로 담은 논문은 과학학술지의 심사과정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심사위원들이 그런 주제는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고 판단하니까요. 그러면 누가 유신론적 진화론과 과학의 대화에 참여할까요? 예컨대 프란시스 콜린스 같은 과학자는 유신론적 진화론을 지지하고 이에 대한 담론을 활발하게 생산하지만 이를 과학의 영역 다시 말해 과학학술지에서 진행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과학대중서, 강연, 인터뷰 등등 이런 담론을 진행할 공간은 많습니다. 당연히 유신론적 진화론을 주제로 과학자, 신학자, 철학자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학적 담론에 참여합니다. 이 경우 과학학술지가 아닌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다룬 전문학술지들에서 이들 담론이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Zygon 같은 학술지가 대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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