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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책] 쉽게 쓴 후성유전학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0. 8. 13.

 

러처드 C. 프랜시스 | 쉽게 쓴 후성유전학 | 김명남 옮김 | 시공사

 

글_ 윤세진 (구일고등학교 과학교사)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천년에 대한 다양한 기대감을 가지기 시작했고, 여러 분야가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것이라는 전망들이 많았었다. 그중에서도 과학 분야는 당연하게 기대를 받는 많은 분야들이 포함되었다. 20세기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중심이 된 물리학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유전자나 유전공학으로 대변되는 생명과학이 중심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1)

 

20세기 중반에 왓슨과 크릭에 의한 DNA 구조가 밝혀진 이래로 분자생물학과 유전공학, 생명공학 기술 등이 발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대를 준 것이 사실이다. 유전학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수사(修士) 그레고어 멘델(Gregor Mendel)이 완두를 이용한 실험에서 출발하였다. 토마스 모건(Thomas Hunt Morgan)에 의해 염색체 위에 유전자가 존재함이 밝혀졌고, 왓슨과 크릭의 연구 이래로 분자 유전학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였다. 생명공학이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혜택들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인한 윤리적인 문제들도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 ‘가타카’나 ‘아일랜드’ 같은 영화는 이런 문제점들을 생각하게 한다.

 

 

대체로 생명공학 기술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생각은 유전자와 많이 연관이 되어 있다. 흔히 유전자가 발견되었다고 발표되곤 하는데,2) 이런 발표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유전자가 사람의 여러 형질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도록 만든다.3) 실제로 유전자는 사람이나 다른 생물체의 형질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유전자는 DNA에 존재하며, 필요한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 유전자가 단백질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단백질은 생물체 내에서 다양한 형질을 표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므로, 이 그림은 DNA가 단백질을 만드는 주인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으며, 기본적으로 이 생각은 옳은 것이다.

 

이렇게 유전자가 생물체의 모든 형질을 결정하는 주인 역할을 한다는 생각은 현대에 부활한 전성설이다.4) 전성설은 19세기까지 번성하다가 후성설이 등장하면서 19세기 중후반부터 쇠퇴하였다. 그러나 DNA에 의해 단백질이 만들어진다는 생각은 또 다른 의미에서 전성설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생명공학적인 기법들(최근에 논란이 되는 크리스퍼 기법도 결국은 이런 전제하에서 발전되는 기법이라고 생각한다)은 대체로 전성설의 입장이라고 본다.

 

서론이 너무 길어졌다. 지금까지 후성유전학을 이해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고, 이제부터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후성유전학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5) 후성유전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 독일이 네덜란드에서 실시했던 식량 봉쇄정책으로 인한 네덜란드 대기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산모의 영양상태가 태아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연구하였는데, 태아일 때 기근을 경험하고 태어난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성인이 되었을 때 많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출처: http://www.p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21

 

후성 유전 현상은 환경이 세포의 변화를 일으키고, 세포라는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유전자의 활동을 조정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세포가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후성 유전적 조절을 받은 유전자의 특징은 유전자에 메틸기(CH3)가 붙는 것이다. 이런 유전자를 메틸화된 유전자라고 부르며, 이런 유전자는 활동성이 낮아져 단백질을 만들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세포마다 다르거나 개체마다 다르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유전자가 형질 발현의 중심이 되는 것을 ‘유전자 감독 가설’이라 부르고, 후성 유전적인 형질 발현을 ‘세포 감독 가설’이라고 부른다. 유전자 감독 가설에서는 세포를 조절하는 정보를 유전자가 가지고 있으며, 유전자가 단백질 합성 단계를 통제하여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어 세포 활동을 통제한다. 반면, 세포 감독 가설에서는 유전자는 생화학 분자들로 이루어진 구성원들의 한 구성원이며, 이들의 상호작용을 세포로 본다. 따라서 단백질 합성 단계를 안내하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세포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후성 유전적 영향을 미치는 것에는 앞에서 언급한 메틸화 이외에 DNA와 결합하고 있는 히스톤 단백질 변형에 의한 영향, 그리고 RNA에 의한 영향의 세가지를 제시한다. 이런 후성 유전적 현상은 당대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후성유전적 영향을 받은 유전자가 자손에게 계속 전달되어 동일한 형질 발현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비만 문제, 호르몬 관련 문제, 게놈 각인 문제, X염색체와 관련된 색맹과 관련된 문제, 암과 관련된 문제 등이 후성유전적인 현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후성유전 현상뿐 아니라 다른 동물과 식물에서 나타나는 여러 현상도 설명하고 있다.

 

출처: http://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136464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 몇가지 있다. 첫째로, 후성유전학에서 강조를 두어야 할 점은 “후성”유전학이라는 점이다. 기존과 같은 유전자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책에서 많은 유전자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 유전자들은 모두 환경에 의해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둘째는, 유전자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대의 전성설이나 근대의 전성설이 모두 후성 유전적 현상에 의해서 잘못된 것이 판명되었지만, DNA구조가 밝혀지면서 다시 전성설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본문 10장 참고). 이는 인간의 직관적인 이해가 전성설에 익숙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상과 친숙한 비유들을 제시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러 후성유전적 현상에 대한 설명을 읽고 나면, 후성유전이 훨씬 설명력이 크고 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로, 라마르크가 제시했던(아마도 라마르크 추종자들이 주장했을 수도 있다) 획득형질의 유전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라마르크는 유전자에 대한 개념이 없을 때였으므로 후성유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러나 후성유전이 환경에 의한 유전자에의 영향이라고 볼 때, 살아가는 환경에 의해 변화된 유전자가 자손에게 전달되는 것은 큰 틀에서 라마르크의 언급 또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넷째는, 도킨스는 자신의 유명한 책인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기체는 다음 세대에 유전자를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고 제시했다.6) 이는 유전자 중심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후성유전학의 관점에서 보면, 유전자가 중심이기보다는 세포가 중심이고 더 나아가서는 유기체가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유전자는 세포의 환경이나 유기체가 처해 있는 환경에 의해 얼마든지 후성유전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체의 유전 현상을 바라볼 때, 직관적으로는 유전자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환경의 영향을 받아 유전자의 발현이 복잡하고 다양하게 변화한다. 이러한 후성유전적 현상은 우리의 삶을 실제적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으며, 앞으로도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나올 것이다. 유전자들이 어떻게 발현되는지에 대한 연구와 동시에 유전자에 미치는 후성유전적인 영향에 대한 연구를 함께 수행한다면 비로소 생물체내에서 일어나는 유전자에 대한 이해가 완성되지 않을까.

 


 

1) 임경순, "과학기술연재1-21세기 과학기술의 전망"  bit.ly/2PKQ0er

2) 비만유전자 bit.ly/3kz4f42, 신경질환의 유전자  bit.ly/2Fcbq1Q,  장수유전자 bit.ly/3kzu6sN, 범죄유전자 bit.ly/2XTLNcA

3) 형질: 대개 생명과학에서 형질이라 하면 유전적 형질을 말하며, 이는 생명체가 지닌 신체적 특징을 말한다. 최근에는 형질을 규정하는 요건들이 다양화되어 생김새나 색깔, 크기뿐만 아니라 생리적 특징이나 행동양식의 특징 등도 중요하게 거론된다. bit.ly/3iwjI2U

4) 고전적인 의미에서 전성설은 다음 링크를 참고하세오.  bit.ly/2DUqyAq

5) 후성 유전학 개념의 시작에 대해서는 다음 링크를 참고하세요. bit.ly/3amR01z

6)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이상임 옮김(2006). <이기적 유전자>, 을유문화사.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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