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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북클럽 이야기

[분당/판교 북클럽]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0. 2. 18.

 

진정한 페미니스트 선언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 질서를 선포하는 것과 같다. 모두가 존귀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기독교 안에서의 페미니즘은 여성주의 시각으로 성경을 ‘의심하고, 비판하고 재구성하기’가 뜨거운 이슈다. 사회주의 기독교 페미니즘은 가부장제만큼이나 기존의 페미니즘을 해체의 대상으로 본다. 저자는 ‘재해석 이상의 해석학’의 입장에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저자가 聖經(성경)의 “경”자인 ‘세로실’을 단서로 성경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계시와 그 경줄 사이사이 사람의 손을 의미하는 ‘위줄’이 가로로 들어가 단단하게 직조된 옷감으로 표현한 것이 매우 흥미롭다. 그렇기 때문에 ‘위줄’의 재해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성경 안에서 ‘경줄’로서의 메시지는 이어받겠지만 여성 억압적인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전통을 세워갈 수 있다는 것이다. 텍스트와 콘텍스트 사이의 상호작용을 중시한 읽기이다.

 

페미니즘 시각으로의 성경 읽기는 낯선 것이 아니다. 행간을 풍성하게 채워있는 ‘미드라쉬’의 한 가지인 것이다. 초기 교회 언니 나혜석은 창세기의 창조 명령을 "살아라"라는 존재 명령, 최용신은 "살려라"라는 구원 명령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모임의 구성원들인 남성들은 중산층 시각에서 페미니즘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이 다수였고 여성들은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몸으로 살아내는 다양한 계층의 워커들이었다. ‘워커’라고 다소 애매한 표현을 쓴 것은 자신이 속해 있는 계층에 따라 일하는 내용도 여성으로 체감되는 ‘억압’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공통분모는 ‘직업인’이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여성들 간에도 논의의 결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되는 지점이다.

 

‘경줄’과 ‘위줄’로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와 ‘페미니즘으로 성경 읽기’라고 해서 성경의 중요 서사는 달라질 것이 없고 ‘성경 안에서의 여성 리더 찾기’와 같은 것은 관점을 달리 한 것이 아니라 세밀하게 읽기 아니냐는 반론도 제기되었다. 20대 청년세대에서 10% 내외의 우수한 여성들에게 90%의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불편한 시각을 갖는 것은 그 자체로 ‘페미니즘’의 필요성이 역설되는 것이 아니냐는 토론과 아무리 가열 차게 독립된 주체로서의 ‘삶’을 주장하던 여성들도 결혼만 하면 ‘남성 중심의 문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우리 문화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어느 쪽이든 불편해지면 또 부당한 관계라는 것을 알면서 ‘남녀’가 함께 가는 길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동반의 관계가 서로의 행복을 담보해 주고, 그것이 인류 전체로 확산될 때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누구도 자신의 행위나 선택의 결과가 아닌 주어진 조건만으로 차별되거나 배제 또는 혐오의 대상이 되는 곳은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다.

 

 

숙대 입학을 포기한 트랜스 젠더 여성과 제발 여군에 전입시켜 달라며 눈물을 흘렸던 그 여성 분의 애절함이 오늘 모인 모든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만이라도 ‘존재형태’로 누군가 우리의 공동체에서 배제된다면 충분히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7시 30분에 만나 11까지 담소와 논쟁과 토론과 수다가 섞여 아쉬운 ‘페미니즘 읽기’ 시간을 보냈다. 창가에 핀 꽃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달달한 포도주와 함께 그리스도인으로의 옳은 삶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는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에 우리 서로는 행복해했다.

 

글_ 김란희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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