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칼럼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삶에 적용하며 좌충우돌하는 光
서광
(과신대 대의원 / 기독대안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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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비오는 봄날 저녁에 서울대입구역 근처 교회에서 남부 북클럽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모임은 내가 속한 교육현장에 적용점을 찾는 설계도와 같았다. 답을 찾아 참여한 발걸음은 내게 도전을 만나게 했다. 그 도전은 자연에 영원한 근사인 과학이 스펙트럼 의견을 포용하는 마음을 요구한 것이다. 명확해야 하고 이해가능해야 할 과학이 손에 잡힐 수 있는 생각들을 이제 살며시 놓고 다양성을 이해하고 그 차이를 구별하는 능력을 요구했다. 그래서 나의 호기심은 더 많은 장소로 이끌었다. 콜로퀴움, 포럼, 기초과정 등을 참여하면서 과학과 신학을 연결하는 데 사고의 지평은 넓어지고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창조기사 논쟁’을 가지고 기초과정과 북클럽에서 연이어 나눔을 하면서 기독과학교사에서도 ‘과학교사, 창조를 말하다’라는 모임으로 창조에 대한 다른 시각들을 서로 이해하고 나누는 상상을 해보았다. 자연스럽게 다른 과학교사들에게도 ‘창조’를 고민해 보고픈 마음이었다. 그러나 올해 초 두 번에 걸쳐 시도하였으나 여러 가지 이후로 아직 그 모임을 진행하지 못했다. 상상과 현실의 간격을 맛보았다. 그러면서 ‘창조기사 논쟁’이라는 책이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고 많은 노력과 시간이 있었음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또 한 가지 도전은 교육현장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적어도 나처럼 헤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생각의 폭을 넓혀주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한편으로는 기독대안학교에 근무하면서 이제까지 과학지식만 가르친 것에 대한 회개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 과학지식도 제대로 가르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의 이런 의욕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오개념을 갖게 하고 신앙을 방해하지 않을까하는 조바심으로 ‘일단’ 시작했다. 약간의 완벽주의자인 나에게는 큰 시도인 셈이었다. 한국교회탐구센터에서 제작하고 있는 ‘101가지 질문 시리즈’ 영상과 ‘오리진’을 기본교재로 하여 의욕적으로 시작한 교육은 원대한 내 마음을 흡족하지 못하게 했다. 준비 부족, 아이들의 관심, 주변 교사의 오해 등은 다음을 준비하는 내게 업그레이드를 요구했다. 올해 1월 교재제작TFT 시작모임에 참여하면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교재를 만들어 교육을 준비하고 아이들의 관심을 높이는데 실마리를 찾고 있다. 더불어 ‘과학의 날’을 이용하여 학교 선생님들에게 창조를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접근해 보고자 한다.
오늘도 좌충우돌하는 徐光
과신대 View Vol.10 / 20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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